광우병·사드·오염수…거짓 선동의 경제적 비용

입력 2023-07-03 17:47   수정 2023-07-04 00:12

“미친 소, 너나 먹어.”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시위에 나왔던 구호다. 지금은 미국산 소고기에 대한 불만을 듣기 힘들다. 2016년엔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전자파가 성주 참외 농사를 망칠 것이라는 낭설이 돌았다. 올해 성주 참외 수출이 사상 최대다.

이번엔 수산물 차례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둘러싼 논란에 전국 횟집이 문을 닫을 지경이라며 아우성이다. 그럴듯한 선동에 휩쓸리는 저신뢰 사회의 단면이다. 경제학에선 신뢰를 사회적 자본의 하나로 본다. 인적 자본, 물적 자본처럼 신뢰가 경제의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리뷰 할인을 하는 이유
경제에서 불신은 곧 비용이다. 거래 상대방을 믿을 수 없다면 사기를 당할 경우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해 둬야 한다. 거래 비용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 위험과 비용을 정부가 나서 제도적으로 해결하려 들면 규제가 된다. 신뢰가 높은 사회라면 거래 비용이 낮아지고 규제 필요성도 줄어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알게 모르게 신뢰 부족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옷 한 벌을 사기 위해 여러 매장을 돌며 발품을 팔고, 10원이라도 싸게 파는 곳을 찾아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판매자를 신뢰하지 못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판매자보다 상품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소비자는 정보 비대칭을 극복하기 위해 ‘탐색 비용’을 치른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기업들은 ‘리뷰 할인’을 한다. 제품 구매 후 인터넷에 후기를 올리는 소비자에게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구매자의 리뷰는 판매자와 소비자 간 정보 비대칭을 줄여준다. 소비자는 다른 구매자의 리뷰를 통해 탐색 비용을 아끼고, 판매자는 소비자 신뢰를 높여 구매를 유도하는 효과를 얻는다.

신뢰가 있다면 주인·대리인 문제도 어느 정도 해소된다. 사장이 직원들을 믿는다면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는지 감시할 필요가 없다. 그럴 시간에 회사의 전략을 세우고 신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케네스 애로는 “모든 상거래에는 신뢰라는 요소가 들어 있다”며 “경제적 후진성의 대부분은 상호 신뢰의 결핍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했다.
저신뢰 사회가 치르는 비용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 출간한 저서 <트러스트>에서 한국을 ‘저신뢰 사회’로 분류했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어떨까. 여론조사업체 입소스가 작년 3월 내놓은 ‘전 세계 개인 간 신뢰’ 보고서가 있다. 세계 30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조사한 것이다. 한국은 이 비율이 23%로 30개국 중 19위였다. 평균은 30%였다.

미국(33%) 독일(33%) 영국(43%) 스웨덴(47%) 등 선진국은 대체로 타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았다. 브라질 말레이시아 튀르키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10%대에 그쳤다. 이 조사에서 타인에 대한 신뢰도는 행복도와도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

신뢰가 약한 사회는 그만큼의 대가를 치른다. 잊을 만하면 등장해 온 나라를 흔들어 놓는 괴담과 선동은 저신뢰 사회의 원인이자 결과다. 거짓말을 하니 믿지 못하고, 믿지 못하니 거짓말이 판친다. 그 결과는 크나큰 사회·경제적 비용으로 돌아온다. 한국경제연구원은 2008년 9월 발표한 ‘촛불시위의 사회적 비용’ 보고서에서 광우병 사태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3조7513억원으로 추산했다.
신뢰 높이면 GDP도 늘어난다
불신이 비용이라면 신뢰는 편익이다. 회계·컨설팅 기업 딜로이트는 ‘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사람의 비율이 50%가 되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이 147억달러 증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제성장률이 0.8%포인트 높아지는 것이다. 한국의 신뢰 수준이 북유럽 국가와 비슷하게 높아지면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오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신뢰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사회의 신뢰 수준이 하루아침에 높아질 수는 없지만,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꼽는 몇 가지 중요한 요인은 있다. △공정한 법 적용 △재산권 보호 △경제활동의 자유 보장 △부정부패 척결 등이다. 이런 원칙들이 지켜질 때 거짓과 선동이 설 자리가 사라지고 한국은 고신뢰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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